'2026/02'에 해당되는 글 4건

  1. 모든 삶은 흐른다 2026.02.24
  2. 감쇠진동 2026.02.24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26.02.10
  4. '그때는 몰랐다' 2026.02.02

모든 삶은 흐른다

바다가 정말 좋다. 계절도 날씨도 시간대도 상관 없이 좋다. 바닷물은 민물보다 몸을 잘 띄워준다는 것을 알고 더 좋아졌다. '너는 바다같은 사람이야'가 살면서 들은 말 중 손꼽히게 기분 좋은 말이었다. 바다에 다녀왔다. 그냥 바다와 파도를 계속 보고 있자니, 어떤 화든 오래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저러한 까닭에 이 책을 안 읽을 수도, 안 좋아할 수도 없었다.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대양은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간과 리듬을 가진다. 파도가 저 멀리 물러나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이 파도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안심하다가 예상보다 더 깊게 파도가 밀려오는 걸 보면 놀랍다. 물러날 때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 우리 삶에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한 번 삐끗하면 쉽게 돌이킬 수 없는 리듬이다. // 파도와 같은 삶을 바란다면, 파도처럼 살아가면 그뿐이다. 파도는 물러나고 밀려오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거니까. (32p)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에 맞춰 사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우리는 누구와도 똑같을 수 없다. 내가 아닌 '거짓 자아' 뒤에 숨겨진 나만의 섬을 되찾아야 한다. // 우리는 나답게 살지 않는 일상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나답게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집착, 사랑 혹은 슬픔에 파묻혀 있고, 주변에서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68p) 

 

수영은 나르시시즘을 덜어내는 연습이다. 내가 정한 목표를 꼭 이루고 싶어 조바심이 든다면 시장에서 팔릴 만한 상품처럼 나 자신을 포장하겠다는 자아와 결별함으로써 그 조바심을 떨쳐버릴 수 있다. 그 후에 내가 얻는 것이 뭐냐고? 그것은 자유, 무중력, 그리고 영원하다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일 것이다. (81p)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와 같은 것이다. 후회에 사로잡히는 순간, 머리는 복잡해지고 행동은 느려진다. 그래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정처 없이 서성이게 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과 같은 늪 속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 사막을 건너려면 그저 묵묵히 걷고 걸어서 건너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걸어야 한다.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항해를 한다는 것은 길을 정해 따라 가는 것이니 확신이 들지 않아도 묵묵히 따라 가보는 것이다. (107~1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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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쇠진동

 

"마찰력이 없는 경우 진동자는 평형 위치 주위에서 일정한 진폭으로 영원히 운동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용수철에 매달린 물체나 추시계에 감쇠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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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산다

 

키만큼 뜬 목도리

지하철에서 깨지 말라고 귀를 막아주던 따뜻한 손

'구(球)처럼' 혼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는 말

편지 11장

러브액츄얼리

방을 가득 채운 풍선

트윈룩

시몬케잌

그런 것들.

 

지금은 너무 혼탁해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은 가라앉고, 어떤 부분은 맑아질테니

또 어쨌든 살아갈 연료를 채취할 수 있겠지

 

다만, 앞으로는, 연료를 '채취'하지 않고 '생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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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나는 두고두고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이딴 서술이 너무 싫다. 잘 읽던 책도 이런 서술을 마주치면 그냥 덮고 싶어진다. 다가올 큰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라는 건 알겠지만, 너무 뻔하고 성의가 없다. 그리고 그놈의 '다가올 큰 사건'이라는 게 대부분 불행이라는 점 때문에 더 싫다. 

이런 걸 자꾸 읽다 보면, 평범한 일상에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이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하기로 한 이 일이,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내가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이 심각한 불행으로 돌아오면 어떡하지? 앞으로 두고두고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별것도 아니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하는 순간, 홍차 대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선택하는 순간, 헬스장 대신 수영장을 선택하는 순간 같이 그냥 하루 수백수천수만번 하게 되는 자잘한 선택의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너무 열받는다. 

행복의 반댓말이 불행이니까. 안온하고 행복한 하루가 이어지다 보면 왠지 갑자기 불행이 올 것만 같다. 그런 불안에 자꾸 잠식되는 내가 싫다. 가끔은 하려던 일을 하지 못할 때 그런 생각 때문에 죄책감도 든다. 굳이굳이 죄책감을 사서 느끼는 나도 싫다. 

잘 지내고 있으니 이런 배부른 생각도 드는 걸까? 싶다가도. 아무튼 짜증이 난다. 

오늘도, 멀쩡히 잘 읽던 책을, 인상을 구기며 덮어버렸다. 근데 뒷부분 궁금하긴 해. 무슨 불행이 닥치는 건지 알고 싶긴 해. 그게 더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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