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SEMITE

미국 국립공원을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싶어서 American the beautiful pass도 샀고 차도 SUV로 샀다. 그 많은 공원 중 왜 요세미티부터 갔냐면.. 나는 문명 게임을 되게 좋아하는데, 문명6 할 때 초기에 제일 많이 발견하는 자연경관이 요세미티 계곡이다. ㅋㅋ 실제로 얼마나 멋있길래 이렇게 게임에 삐까번쩍하게 등장하나.. 궁금했다.. 실제로 가보니.. 그럴만 했다.  

 

요세미티에 어서오세요. 근데 요세미티는 원주민 언어로 '살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그 서부 개척 골드러시 시대에 개척자들과 원주민들의 의사소통 오류로 얼떨결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ㅠㅠ 무서운 이름이다. ㅠㅠ

 

진짜 너무 키가 커서 사진으로 다 담지도 못한 자이언트 세쿼이아. 

 

누운 나무.. 일어나~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요세미티 개발한지 얼마 안 됐을 때 관광객 유치하려고 나무에 이딴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멍 뚫은 나무는 거의 다 죽었다고..

 

그 유명한 노스페이스 하프돔. 정말 멋져.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들. 한국에서 캠프라인 등산화를 사서 가져왔는데 정말 잘 산 것 같다. 접지력이 최고다. 

 

테나야 호수. 풍경이 지나치게 아름다워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였다. 

 

호숫가에 누가 이런 걸 만들어놔서.. 나도 돌을 하나 보태고 소원을 빌었다.

 

빽빽한 전나무숲. 올라갈수록 풍경이 멋있어지는데 힘들어서 많이 올라가진 못했다. 

 

글래시어 포인트는 산불로 폐쇄돼서 못 갔다. 근데 다른 데도 다 이렇게 멋졌는데 거긴 도대체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터널뷰. 폭포는 못 봤다. 물이 다 말라있어 물자국만 봤다. 

 

밤하늘.. 베가, 백조자리 데네브를 찾았다. 요새도 종종 생각나면 '데네브'를 한 5번씩 반복 재생해서 듣는데.. 진짜 데네브를 보다니..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놀러간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N FRANCISCO  (0) 2026.10.22
DALLAS  (0) 2026.10.17
CHICAGO  (6) 2026.09.29
남해  (0) 2019.05.19
히타, 아마가세  (0) 2019.02.07
,

SAN FRANCISCO

금문교와 바다와 빅테크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세번 봤다. 아침의 금문교, 오후의 금문교, 밤의 금문교. 해무에 가려서 안 보일 때도 많다는데, 운 좋게 세번 다 해무 없이 시야가 깨끗했다. 

 

소살리토에서 바라본 아침의 금문교.

 

오후의 금문교.

 

밤의 금문교.

 

첫날엔 차를 빌려서 HWY1을 탔다. 서부 해안도로를 달리는 건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기름값이 우리 동네보다 1.5배 비싸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역시 바다 조망 드라이브 최고. 중간중간 해무가 심해 바다는커녕 당장 몇 미터 앞도 잘 안 보이는 구간도 있었지만, 파도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 안 터지는 구간이 많았다. 사진은 Pillar Point Harbor. 구름이 많이 껴서 하늘이 쨍하지는 않았는데 이것도 나름 운치 있었다. 

 

Barbara's Fishtrap에서 클램차우더와 크랩 케이크를 먹었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인데 하필 오후 3시 20분쯤 도착했다. 애매모호.. 근처를 대충 돌아보다가 4시 땡 하자마자 들어갔는데 벌써 줄이 길었다. 근데 여기 클램차우더 정말정말 진짜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날 첫 끼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조개도 엄청 많고 부드럽고.

 

해안도로 따라 계속 달리고 달리고.. 서퍼들도 많이 봤다. 아, 나는 진짜 왜 이렇게 물이 좋을까. 강, 호수, 바다, 파도 이런 게 좋아서 미치겠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바다가.. 가끔은 모래사장이었다가, 절벽이었다가, 자갈해변이었다가 그랬다. 중간에 계속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막상 찍어놓고보니 풍경이 비슷비슷해서 다 올리진 않았지만. 약간 속초 느낌..? ㅋ..

 

Half Moon Bay를 포함해 여러 비치를 지나친 끝에.. 산타크루즈까지 갔다. 일부러 일몰시간에 맞췄다. Natura Brideges State Beach가 최종 목적지였다. 몇 시간 운전한 게 전혀 후회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카메라에 도저히 담기지 않는 감동.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모래사장에 그냥 앉아있었다. 신발에 모래가 엄청 들어가서 일주일 내내 버석거렸다. 산타크루즈의 일몰을 신발에 담아와 일주일간 밟고 다닌 것이죠..

 

샌프란까지 왔으니 아무래도 스탠포드를 구경해야겠지.. Hoover Tower. 기념품샵도 갔는데 굳이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나는 스탠포드보다 나의 모교와 Mizzou가 더 좋은 것 같아.. ㅎㅎ

 

구글 본사에 갔다. 그냥 거대한 구글 스토어 느낌이었다. 이미 미국에 오자마자 월마트에서 Fitbit을 사버렸기에 굳이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알록달록한 구글 자전거가 있었는데 직원용인 것 같았다. 여기 찍고 애플파크도 갔다. 거긴 거대한 애플 스토어 느낌이었다. 그래도 귀여운 굿즈가 있으면 기념 삼아 하나 사려고 했는데 별로 귀여운 게 없었다. ㅠㅠ

 

쿠퍼티노의 인스타그램용(?) 맛집.. 외국인들이 신라면으로 만든 이 메뉴를 제법 많이 먹고 있어서 신기했다. ㅋㅋ 회사 선배를 만나 두달 만에 회사 이야기를 했다. 오기 직전까지 막 열을 올려 얘기하던 주제들이었는데 자세한 내용도, 그에 대한 감정도 벌써 희미해진 걸 느꼈다. 그때는 되게 절망적이었다가 희망적이었다가 큰일 날 것 같았다가 그래도 다행인 것 같았다가 난리였는데 한발짝 떨어져서 보니.. 내 생각만큼 엄청난 일들은 아니었다. 모든 일이 어차피 지나고 보면, 떨어져서 보면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돌아가더라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Twin Peaks에서 본 샌프란시스코 야경. 롯데타워 비슷한 것도 보이고 그 앞에 베이브릿지도 보인다. 베이브릿지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다리다. 오클랜드가 이렇게 가까운 줄 진작 알았으면 이번에는 진짜 ㅁㅈ이를 볼 수 있었을텐데... ㅠㅠㅠ ㅁㅈ이가 오클랜드에 온 날 나는 요세미티에 가기로 돼있었기에 눈물을 삼키며 포기했다. 나중에 ㅈㅁ이는 베이브릿지를 건너는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 얘들아 어쨌든 우리는 제법 가까이에 있었구나. 너희도 나와 같은 풍경을 보았겠구나.

 

Ghirardelli 초콜릿 가게. 골드러시 때 광부들한테 초콜릿 팔던 가게라고 한다. 제법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가 아마 피어7이었던 것 같은데.. 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파밸리도 갔다. 포도밭에서 (허락 맡고) 포도도 따먹어봤다. 와인용 포도는 알이 되게 작다. 

 

양조장을 두 군데 가서 전부 10잔 넘는 와인을 시음했다. 와알못이지만 나는 느끼한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포춘쿠키의 발상지에서 산 포춘쿠키. 

 

Sotto Mare의 Chioppino..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가는 식당, 제일 많이 주문하는 메뉴 아닐까? 근데 유감스럽게도 2인분부터 팔아서 동행을 구해서 갔다. 절대 혼자 다 못 먹음. 밥 먹다가 한국에서 연락 와서 동행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거의 중간에 일어났다. 

 

이날부터는 정말 제정신 아닌 채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우유 상태를 계속 확인하느라 거의 밤을 샜고.. 숙소에서 계속 울고 있을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눈물 뚝뚝 흘리며 걸어다님. 넋 놓고 1시간씩 걷다가 도착한 샌프란 대표 관광지 피어39.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고 그래도 여기는 가봐야할 것 같아서 갔는데.. 갈매기 보고 울고 바다사자 보고 울고;; 마주치는 모든 동물이 우유를 생각나게 해서 자꾸 울기만 했다. ㅠㅠ

 

이건 정말 감명 깊었던 무인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 샌프란에서만 탈 수 있다. 핸들이 막 저절로 돌아가는 걸 보면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신나고 짜릿하고 신기해서 한 3번 탔다. 

 

'놀러간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OSEMITE  (0) 2026.10.22
DALLAS  (0) 2026.10.17
CHICAGO  (6) 2026.09.29
남해  (0) 2019.05.19
히타, 아마가세  (0) 2019.02.07
,

2026년 축제

올해는 아무래도 더 오래 기억에 남겠지. 

미역도 구하기 힘든 동네에서 미역국을 끓여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Suncatcher. 밤의 방에는 은하수가 흐르지만 낮의 방은 조금 심심했는데. 취향 저격 선물.

 

이젠 낮에도 이렇게 벽이 반짝인다. 

 

Table rock lake. 자갈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좋은 곳. 

올해도 행복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남은 생일주간도 행복하게 보낼 예정입니다.

가을 최고. 생일 최고. 

 

 

,

DALLAS

AA센터와 BBQ와 JFK의 도시 댈러스..

보통 '달라스'라고 많이 하는데,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상 '댈러스'가 맞으므로 나는 앞으로도 '댈러스'라고 부를 것이다. ^.^

MO에서 다른 주로 이동할 때는 보통 댈러스 아니면 시카고에서 환승을 한다. 그래서 두 달 전 여기 처음 올 때도 댈러스 공항을 거쳤는데, 이번에는 환승 말고 작정하고 댈러스를 찾아가보았다. 사실은.. 관광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ㅁㅈ이 보러 갔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약속이 펑크(?) 났다. 

 

MO엔 없는 한인타운이 있고 순대국도 먹을 수 있다길래 일단 비행기 내려서 바로 거기부터 갔다. Carrollton H마트 앞에 있는 한식당의 순대국.. 두 달 만에 먹는 순대국.. 너무 반가워서 파도 골라내지 않고 먹은 순대국.. 비록 당면순대 밖에 안 들어있지만 이게 어디냐 싶었던 순대국. ㅋㅋ

 

H마트 구경. 월마트, 트조, 하이비, 알디 등등을 맨날 드나드는 마트 구경 전문가지만 H마트는 처음 가봤다. 왜냐.. MO에는 H마트가 없으니까.. ㅎㅎㅎ H마트는 엄청 크고 또 엄청 많은 게 있었다. 이런 것까지 있다고? 싶은 것까지 있었다. 가장 반가웠던 건 칸쵸.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하다 갑갑하면 누구 불러서 편의점 내려가서 칸쵸 사먹는 게 큰 낙이었다. 칸쵸에 이름 새기는 이벤트 때문에 갑자기 품귀 현상 일어났을 때 진짜 격분했는데.. 나의 얼마 안 되는 낙을 이렇게 빼앗기다니! 하면서. ㅎㅎ 미국 와서 칸쵸 비슷한 과자가 없나 열심히 찾아봤는데 못 찾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H마트에서 만난 칸쵸. 묶음 판매를 하길래 냉큼 샀다. 

 

호텔 좋았는데.. 날씨도 좋았고.. 뷰도 좋았고..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행기 내리자마자 전해진 약속 펑크 소식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개 우울해져서 'ㅁㅈ이를 못 보는 거면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냥 비행기까지 타고 칸쵸 사러 온 사람 된 기분? ㅎㅎ.. 비행기표랑 숙소 값이 얼만데.. 이렇게 당일에 통보를 한다고..? 과연 여기가 LA나 뉴욕이었어도 그랬을까? 서럽고 서럽고 또 서러웠다. ㅠㅠ

 

그래도 가보긴 해야지..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그나저나 어쩌다보니 미국 와서 국내선은 아메리칸 에어라인만 탔는데 불만이 있다. 얘네는 위탁수하물 없다고 해도 자꾸 탑승구 앞에서 내 기내용 캐리어를 납치해서 위탁수하물로 부쳐버린다. 나는 당연하게도 보통 제일 싼 티켓을 사기 때문에 탑승 순서가 마지막인데, 내가 탈 때쯤 되면 기내에 짐 실을 공간이 부족해지나보다.. 짐 맡기고 찾기 귀찮아서 일부러 기내용 캐리어만 가져왔는데 그걸 왜 위탁수하물로 부치나요..? 그리고 그럴거면 캐리어 보호커버를 가져왔지!! 처음엔 '엥..?' 이러면서 영문도 모르고 당했고 두번째는 알고도 당했다. 무방비하게 위탁수하물로 던져진 검정색 캐리어는 나중에 찾을 때 보면 기스가 엄청 늘어나있다. 아 그거 비싼 거라고요.... 여튼 이러한 AA에 대한 불만을 되새기며 AA센터 입성. 약속 펑크 소식을 들은 뒤 큰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실제로 큰 감흥이 없는 두 시간을 보냈다. ㅋ.. 

 

유명한 눈알. 댈러스 예술지구가 그렇게 좋다던데. 짧은 일정으로 왔으므로 가진 못하고 이것만 구경. 

 

그래도 텍사스까지 왔으니까 BBQ를 먹어야죠. 유명하다는 Terry Black's BBQ는 숙소에서 좀 거리가 있길래 동선의 효율을 따져 Moak's Family Texas BBQ에 갔다. 식당 앞의 큰 소에서 훈제를 하는지 엄청 맛있는 냄새와 연기가 난다. 브리스켓, 할라피뇨 소시지, 맥앤치즈, 맥주를 시켰다. 와 브리스켓 굿. 소스 굿. 할리피뇨 소시지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지만 좀 짰다. 맥앤치즈는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었다. 

 

밥 먹고 MoMoney에 갔다. 돈을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박물관인데 올해 개관했다고 함. Sixth Floor Museum에 갈까 여기에 갈까 밥 먹으면서 5분 정도 고민한 끝에 여길 선택. 더 재밌어보였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20불. 주말엔 꽤 붐빌 것 같다. 티켓은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가는 걸 추천. 들어가자마자 간단한 설명을 듣고.. '돈은 당신에게 뭐냐' 하는 질문을 받고.. 3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가야 한다. 난 Freedom을 선택했는데 Opportunity를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곳이었다. 내 얼굴로 지폐도 만들어주고 ㅋㅋㅋ 방 안에서 레이저 피해 움직여야 하는 도둑 체험도 있음. 개꿀잼이라 혼자 3번이나 함 ㅋㅋㅋ

 

Sixth Floor Museum은 들어가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댈러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만큼.. 당연히 보러갔다. MoMoney 바로 앞이긴 함. 오스왈드가 이 건물 6층에서 카퍼레이드 중인 케네디를 쐈다. 케네디 피격 사건에 대해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UPI 기자의 전화기 쟁취 일화다. 사건 직후 케네디 뒷차에 타고 있던 기자들 중에 UPI 기자가 하나분인 카폰을 제일 빨리 잡아서 1보를 먼저 쐈고, 전화기 뺏긴 AP 기자는 옆에서 눈 뜨고 물 먹었다는 이야기.. 여튼 역사의 현장에 오니 신기하고 기분도 좀 이상했다. 당시 긴급뉴스 영상 같은 것도 찾아보게 됐다. 노트북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기자들은 이 경천동지할 소식을 어떻게들 보고하고 취재하고 썼을까.

 

케네디가 총을 맞은 위치는 X자로 표시돼있다

갑작스러운 댈러스 방문, 비록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텍사스를 찍먹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도록 하자.. 칸쵸를 산 것에도 의의를.. ㅋ... 댈러스는 아마 환승하러 몇 번 더 가게 될 것 같다. 공항 밖으로 나가진 않겠지만.

 

'놀러간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OSEMITE  (0) 2026.10.22
SAN FRANCISCO  (0) 2026.10.22
CHICAGO  (6) 2026.09.29
남해  (0) 2019.05.19
히타, 아마가세  (0) 2019.02.07
,

이천이십육년 시월

 시월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월. 원래는 시월 일일부터 마음이 막 싱숭생숭하면서도 설레고 그랬어야 하지만..

- 우유가 많이 아팠다. 하필 샌프란에 가있을 때 일이 벌어져서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걸어다녔다. 하지만 샌프란엔 펜타닐 중독자가 워낙 많으니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을지도.. 한국 낮 시간에 자다가 소식 놓칠까봐 잠도 잘 못 자고 한동안 정신 놓고 지냈다. 내가 우유 두고 여길 왜 왔을까 자책을 하다가, 우유 데리고 왔으면 여기서 병원이나 제대로 갈 수 있었을까 그 생각도 하다가, 다시는 우유를 못 보면 어떡하지, 무서워하다가.. 오만 생각과 후회와 기도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 다행히 우유는 몇 차례의 위기를 잘 넘기고 많이 회복했다. 검사 결과도 가장 바라던 대로 나왔다. 당분간은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나을 수 있는 병으로 밝혀졌다. 우유가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준 시간만큼만 나와 더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 정신을 차리고. 좀 많이 자고. rec과 수업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간만에 카페 가서 메일 답장도 썼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심도 있는 고민을 했다. 이번 사태로 나의 1년 계획에 상당한 변동이 불가피해졌다. 우유가 중요하니까 우유니는 포기하기로 했다. 디즈니월드도 깔끔하게 포기. 콜로라도 스키 여행? 포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디즈니를 좋아하고 겨울마다 보드 탔다고.. 오바하지 않기로 했다. 우유니는 지금 아니어도 언젠가 갈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한숨 돌리고 보니 벌써 시월도 반쯤 지나있다. 시월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두번째로 좋아하는 날은 지나갔다. 천사같은 룸메 아가가 얼마 전 '언니 생일에 우리 집에 사람들 불러서 파티할까요?' 라고 물어봤는데.. '그래.. 파티 좋지.. 네가 하고싶다면 해.. 근데 그럼 나는 나가있을게..' 라고 답했다. 룸메 아가도 웃고.. 나도 웃고.. 어색한 영어 스몰토크로 생일을 보내고 싶지 않아.. ㅠ '그냥 마라탕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 로 대화를 마무리. 

- 여기 온지 두달이 지났고, 룸메 아가에게 테니스를 가르친 지도 한달이 넘었다. 처음 왔을 땐 저녁 8시까지도 환했는데 이제는 6시 반이면 해가 진다. 나야 한량이지만 룸메 아가는 바쁘고 퇴근도 이르지 않기 때문에 점점 수업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ㅠ 그래도 룸메 아가는 성실한 학생이다. 운동 신경도 제법 있어서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 다만.. 나도 잘 못 치는데 얘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좋은 선생이 맞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많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백핸드까지는 진도를 마치고.. 내년 봄에는 랠리를 시도하겠다.

- 청강생은 시험기간엔 수업에 안 들어가도 되기 때문에, 진짜 대학생일 때와는 다르게 시험기간을 기다리게 된 아이러니.. 미국 대학생들도 시험기간엔 벼락치기하느라 눈밑 퀭해지고 그러는 거 보니 좀 재밌다. (미안) 수업을 듣다 보면 감탄할 때가 좀 있다. 왜 우리는 이런거 대학 때 안 가르칠까? 아니 적어도 수습 때는 얘기해줘야 했던 거 아닐까? (다 배우고 들었는데 내가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음) 싶은 것도 많고. 십몇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배우고 그걸로 달달 볶이고 살았는데, '왜' 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되짚는 느낌. 일을 안 해서 그런가, 거룩하고 희망찬 이론만 들어서 그런가, 요새는 또 나의 업이 제법 맘에 드는.. 것 같기도.. 해..   

- 내 추구미는 오랜시간 단호한 인간이었는데, 요새는 다정한 인간이 멋진 것 같다..? 

,
|  1  |  2  |  3  |  4  |  ···  |  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