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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로와 스티치 봤고, 디센던츠도 봤다.
트와이스 플레이리스트 만들었다.
금요일을 기다린다.
이러다 곧 핸드폰 번호도 바꿀 기세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릴로와 스티치 봤고, 디센던츠도 봤다.
트와이스 플레이리스트 만들었다.
금요일을 기다린다.
이러다 곧 핸드폰 번호도 바꿀 기세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오기 전에 '이메일 보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왔는데. 진짜로 오는 메일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사랑하는 4D는 벌써 트리플 크라운을 만들어줬다.
지금은 또 후배의 메일을 보고 아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맞아. 나 사실 까먹고 있었어. 근데 덕분에 새삼 생각났어. 고마워. 뿌듯해. 자랑스러워. 나도, 너희도.
메신저만큼 빠르지 않은, 메일의 속도가 좋다. 꾹꾹 눌러서 좀 많은 얘기를 쓰고, 돌아온 얘기들을 읽고, 또 다시 꾹꾹 눌러서 답장을 하는 게 좋다. 낯 간지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도 메일로 쓰면 쓸만 하다.
그니까, 메일 보내. 답장할게. 바로는 아니더라도, 꼭 할게.
미국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
아직 개강을 안 해서 한량처럼 지내고 있다. 그래도 나름 이런저런 잡무(ex 차량 등록, 은행 계좌 열기, 렉 가입)를 천천히 처리 중이다. 오기 전엔 도착 후 일주일 만에 모든 걸 다 해치우고 맘 편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어쩐지 느긋해져서 그냥 내키는 날 하나씩 하는 중. 방학의 대학 도시는 정말로 고요하고 평화롭고 느릿하다. 여기서 혼자 조급해하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음.
몇 가지 기록.
1. 여기 너무.. 케바케의 나라다.. 그때그때 다른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오늘 가서 물어보면 A라 했는데 내일 다시 물어보니 B라 하고. 이 사람한테 물어봤을 땐 XX일에 오라고 했는데 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OO일에 오라고 하고. 워크인 안 된다고 하더니 그냥 가면 또 받아주고.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좀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 유연해서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 미국에서 유학한 친구가 미국서 운전시 주의할 점이 있다며 '도로에서 STOP 표지판을 보면 꼭 멈춰야 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진짜였다. '얼마나 멈춰야 되는데?' '어.. 한 3초?' 이래서 웃고 말았는데 진짜 한 3초였다. 신호등 없이 STOP 표지판만 있는 사거리에 있으면.. 꼭.. 눈치게임을 하는 것 같다. 눈치껏 기다리다가 눈치껏 먼저 보내주고 눈치껏 나도 간다. 아무도 재촉 안 하고 빵빵거리지도 않는다. 쫌 재밌고 귀엽다.
3. 여기 와서 지금까지 제일 많이 한 활동은 마트 어슬렁거리기. 월마트, 트조, 딕스 등등을 어슬렁거렸는데 갈 때마다 재밌다. 근데 어제는 커터칼을 사러 갔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트에서 총도 팔면서 커터칼을 안 판다고? 한국에서 쓰는 커터칼은 없고, 조그만 칼날 하나에 손잡이 달린 (자기들 나름대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듯한) 그런 칼만 있었다. 그리고 오리엔탈소스가 안 보인다. 오만 인스턴트와 공산품을 쌓아놨으면서 오리엔탈소스는 없고 랜치에 미쳤는지 랜치만 종류별로 있다. 결국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랜치를 먹는 중.
4. 뭐 먹고 살아야 되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다. 첫 며칠은 에어비앤비 주방이 너무 더러워서 도저히 뭘 해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사과 바나나 요거트로 연명했다. 제대로 입주한 뒤에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뭐 대단하게 먹진 않는다. 샌드위치랑 샐러드 해먹고 라자냐도 데워 먹고. 아직 한국 음식은 그립지 않다. 친구들이 바리바리 챙겨준 코인육수랑 블럭국, 캔김치는 하나도 안 땄다. 그런데 천사 같은 룸메 아가가 자꾸 한국 음식을 챙겨준다. 등갈비랑 제육이랑 잡채랑.. 어제는 말복이라고 삼계탕을 해줬다. 최고의 룸메다. 나는 벌레를 잡아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너 나 오기 전엔 벌레 어떻게 잡았니..
5. 일찍 잔다. 약도 가져왔고 오자마자 CVS 가서 멜라토닌도 사놨는데.. 대체로 안 먹고도 잘 잔다. 자려고 누우면 기분이 좋다. 베스트가 사준 우주 무드등 덕분이다. 천장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은하수를 보다 보면 행복해진다. 물론 자고 일어나서도 기분이 좋다. 방이 너무 내 스타일이다.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더 알고 싶어진다.


요새
내 마음이 행선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
그리고.. 애초에 행선지가 왜 있어야 하는지..
에 대해 드디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늙은건지, 철든건지.
그리고.
몸은 어쨌든 잘 도착했어. ㅋㅋ


- 친구들이 27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선물해줬다.
우리는 ㅇㅁㄱ 길거리 배경 단체사진으로 필름의 스타트를 끊었다.
교복을 입고 다니던 길인데.. 좀 늙은 얼굴로 사진을 찍으려니.. 상당히 쑥스러웠다.
친구들은 앞으로 1년간 26장의 사진을 신중하게 찍어오라는 미션을 줬다.
덕분에 잠만 자거나 게임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정말 똑똑하고 훌륭하다.
뭘 찍게 될지 아직은 진짜 진짜 잘 모르겠다.
다만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나와 내 친구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 그리고 한 장.
다녀올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