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객선 침몰사고에서의 언론


1. 자극적인 제목을 단 인터넷 어뷰징 기사들.

 재론의 여지 없이 쓰레기라고 본다.
 '여객선 침몰 사고 현장 사진 "끔찍해!"' 'skt, 긴급 구호품 제공, 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 잘생겼다~"' 이런 기사 제목들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이번 여객선 사고가 타이타닉호 사건과 비슷하다며 타이타닉 영화 소개하는 기사도 봤다. 
 기사를 쓰고 제목을 단 기자나 그딴 쓰레기를 방출하도록 내버려두거나 혹은 부추겼을 해당 언론사 모두 쓰레기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부류라고 본다. 인터넷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수십번씩 계속 쏟아지는 이런 기사들의 목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클릭수' 단 하나다. 그 어떤 정상 참작의 여지도 없이 윤리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2. '친구의 죽음을 아느냐'고 묻는 기자. 실종자 가족을 비추는 카메라.

 상대에게 상처가 될 질문을 던져 논란이 된 기자들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피도 눈물도 없는 데스크 혹은 취재팀장 아래서 일하는 순종적 인간 같다. 지가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거라면 전자고, 지도 이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울며겨자먹기로 물어본 거면 후자일 것. 물론 그런 지시가 내려와도 쌩까고 그런 종류의 질문은 하지 않는 기자가 더 많다.
 기자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현장에 가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온 국민이 실종자들을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공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현장에 가서 당사자들을 만나 소식을 전하는 것은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질문의 종류와 수위를 가렸어야 했다고 본다. 
 실종자 가족을 비추는 카메라도 조금만 신경을 더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현장 상황을 영상으로 전하는 것도 기자가 할 일이다. 집에서 TV만 지켜보고 있다가 친척 얼굴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열하는 가족들을 한두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집요하게 비춰줄 필요까진 없다. 감성팔이 전파 낭비같다.


3. 전원 구조에서 290명 실종으로.. 속보경쟁 속 난무하는 오보.

 가장 가슴이 아팠던 순간이다.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에 안도하다가 100여명이 아직 구조중이라는 게 밝혀졌고, 여기에 안행부 집계가 잘못돼 생사불명인 승객이 200명이 넘는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1차 책임은 우왕좌왕한 당국에 있다. 경기교육청이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전원 구조라는 문자를 학부모에게 쏘고서 기자들에게 알린 게 시작이었는데, 구조 소식만 기다리던 기자들도 듣자마자 추가 확인 없이 속보를 쏜 것 같다. 이후 안행부는 브리핑에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발표했는데, 경기교육청에 데인 기자들은 '해경에선 구조 인원이 100명대라고 했는데 확실한 거냐'고 물으니 다시 확인하겠다고 답하고는 다음 브리핑에서 자신들의 숫자가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한다.
 기자들이 현장에 가서 구조자 숫자를 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당국의 발표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당국이 숫자를 발표했더라도 기본적으론 크로스체크를 한 뒤 내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모든 기관이 혼란에 빠져 제각기 다른 숫자를 발표한 이번 상황에서는 크로스체크도 큰 소용이 있었을까 싶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개의 팩트라도 서로 먼저 보도하려는 속보 경쟁 속에서 기본적인 원칙들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그래서 막을 수 있는 오보가 나올 가능성도 더 커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속보 경쟁을 자제하고 언론의 기본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 이게 순진한 생각인거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대로 확인하지도 틀린 기사를 썼다고 원색적으로 언론을 비난하다가 이번에는 갑자기 '시신이 가득 찼다는데 해경이 언론 기사를 막고 있다' '문자도 오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언론에서는 기사를 안 쓰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 두 이야기를 같은 사람이 하는 건 아니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정확한 사실이라도 일단 입수되면 먼저 기사를 쓰고 보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4. 이런 상황에서 여객선 보험 운운.

 안타깝지만 이건 다른 맥락이 있을 수 있다. 기자가 피도 눈물도 없는 쓰레기라서 돈 얘기를 먼저 꺼낸다기보다는, 취재 영역의 문제다.
 언론사에는 여러 취재부서가 있고 기자마다 담당하는 출입처가 다르다. 이번 사고가 터지가 기자들은 각자의 출입처에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쓸 수 있는 기사가 없는지 살폈을 것이다. 사회부 기자들은 지금 진도에 가서 현장 상황을 취재하고 있거나 서울에 남아 당국의 대응과 그동안의 문제점을 취재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부 기자는 사고와 관련한 정치인들의 행보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산업부 기자는 이 여객선 회사의 재무구조나 안전진단 규칙 등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험 기사는 경제부의 보험 담당 기자가 썼을 것이다. 경제부 기자가 아무리 이 사고가 안타까워도 막무가내로 현장에 가서 취재에 뛰어들 수는 없다. 나몰라라하고 변액연금보험의 장단점 따위를 쓸 마음도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딴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자신이 찾아볼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찾아 기사를 쓴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특보를 내보내던 방송 뉴스에서 사고 상황 전달과 보험 관련 정보를 병렬 배치한 것은 섬세함이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보험 기사를 인터넷 어뷰징용으로 바꿔 "네티즌들은 '보험이 있어 그래도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코멘트를 달아 내보낸 언론사는 1번에서 말했던 것처럼 쓰레기다. 



5.

 나는 기자다. 어제와 오늘 이번 사고와 관련한 어떤 보도들을 보면서 이 업계에 환멸을 느꼈다. 승객들을 나몰라라하고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만큼이나 언론의 보도 행태가 욕을 먹고, 음모론만 횡행하는 것을 보고 반성도 많이 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개판을 쳤으면. 얼마나 기사를 이기적이고 쓰레기처럼 썼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언론을 믿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다른 복잡한 생각도 든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라고 과열된 속보 경쟁 속에서 초연함을 유지하며 뭔가 다른 질문을 하고 뭔가 다른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사회부에 있을 때 장례식장에 취재 가는 게 정말 너무나 괴롭고 싫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린 사건사고로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현장에 가야했지만, 도착해 유족을 마주하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눈물부터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내가 그렇게 속절없이 현장에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을 때.. 다른 어떤 기자는 유족에게 말을 붙였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고, 정부가 과실을 숨기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고, 기사를 써서 정부가 유족에게 사과를 하게 했고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도록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가슴 찡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것을 활자로 옮겨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고인을 기억하도록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종종 같은 기자가 보기에도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는 인간 쓰레기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기자들은 진도의 현장에서, 혹은 회사 안에서 울면서 기사를 쓰고 있다. 생존 가능성 기사를 쓰는데 도저히 손이 나가질 않는다면서.. 눈물을 계속 흘렸더니 수첩이 젖어 글씨가 번져 알아볼 수가 없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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